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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의 이름을 짓다

이름을 짓는 일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일게다.
아담의 이름짓기와 김춘수의 ‘꽃’처럼 말이다.

우리 둘째 아들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나?
첫째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인 내가 짓기로 약속을 받았다.

집사람이 병원 분만실에 입원하는 동안 부르기 좋은 이름들을 찾았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하게 밀었던 것이 ‘창연’이다.
그럼 한자는 어떻게 쓸 것인가?
‘창(昌)’은 이미 형 이름에 있으니 그대로 가면 되고, 나머지 ‘연’자를 무얼로 하느냐가 관건이다.

둘째의 태명[footnote]엄마의 뱃속에 있는 동안 부르는 이름.[/footnote]은 ‘한결’이었다.
집사람의 태몽에 큰 물이 있었고, 초지일관한다는 뜻이 있기도 해서 ‘한결’이라고 붙였다.

연에 대한 여러 후보가 있었다.
대표적인 후보가 淵, 延, 衍 등이었다.
태몽과 뜻이 같으며, 앞으로 아이가 했으면 하는 바람과 일치하기에  오늘 衍자로 정하였다.
물처럼 흘러넘칠 것은 공법과 정의가 되길 소망한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아모스 6장 24절)처럼 말이다.

衍자는 다음과 같은 자전의 뜻을 가지고 있다.






훈음 : 넓을 연
사성음 : yǎn
부수 :  (다닐행 部)
획수 : 9 (부수획수:6)
뜻풀이 :

㉠넓다  ㉡넓히다  ㉢넘치다 ㉣남다 ㉤넉넉하다 ㉥지나다 ㉦펴다 ㉧흐르다 ㉨퍼지다 ㉩평지

회의문자

삼수변(氵(=, 氺)☞물)(행)의 합자(). 물이 흘러감의 뜻. 퍼짐의 뜻은 음의 차용

아모스 5장 24절

개역한글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원문보기
공동번역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 원문보기
표준새번역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원문보기
NIV But let justice roll on like a river, righteousness like a never-failing stream! 원문보기
KJV But let judgment run down as waters,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원문보기
NASB “But let justice roll down like waters And righteousness like an ever-flowing stream. 원문보기
新改譯 公義の 水のように, 正義をいつも 水の 流れる 川のように, 流れさせよ.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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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퇴원하다.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있다가 오늘 퇴원했다.
분유도 잘 먹고, 체온 유지도 잘 한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실 주말 동안은 병원에 있을줄 알았는데, 오전 면회시간에 퇴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퇴원 수속을 밟았다.
퇴원이 끝난 다음, 새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아이와 엄마가 건강하게 되어서 집으로 왔으면 하는 것이 최대 바람이다.

한결이 퇴원한 날

콧날이 오똑하고, 귀도 이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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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 퇴원하다.

집사람이 오늘 퇴원했다.
퇴원하기 전에 한 번 더 분유 먹이는 연습[footnote]일찍 태어난 아이는 분유 먹이기가 더 어렵다.[/footnote]을 했다.

한결이 기저귀 갈기

엄마가 기저귀 갈아주니 개운하다. 앗, 나의 알몸이 공개되다니!


한결이 분유 먹기

엄마, 나 잘 먹죠?


한결이 눈뜨고 젖 먹기

저도 한 인물 하지요?


퇴원해서 첫애 낳은 산부인과에서 운영하는 산후조리원으로 갔다. 아, 이제 더위와의 전쟁[footnote]남편들은 산후조리원에서 옷을 최대한 가볍게 입는다. 가보면 왜 그런지 안다.[/footnote]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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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태어나다

오늘 아침 예고도 없이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집사람 전화를 받고 세수만 하고 부랴부랴 차를 운전하여 갔다.
가는 도중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보호자의 수술승락을 전화통화로라도 받아야겠다고 하면서, 수술시 예상되는 여러가지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 보호자는 생명을 책임진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병원을 도착하니 이미 수술실에 들어갔단다. 그리고 회복실에 있단다. 보호자도 회복실에는 못들어 간단다.
아이는 신생아집중치료실[footnote]요즘은 중환자실이라는 말 대신 집중치료실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중환자라는 말이 환자나 가족에게 무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footnote]에 갔다. 인터폰 너머로 간호사의 얘기가 아이가 아직 안왔단다.
잠시 기다리니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넣어져서 집중치료실로 왔다. 거기서 첫 대면을 했다. 아, 우리 아들이다.
집중치료실의 운영방침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 정해진 면회 시간에만 애기를 볼 수 있다.
– 면회시 비닐 가운 또는 천 가운[footnote]분유를 먹이는 사람은 천 가운을 입는다. 이 사실도 며칠 후에야 알았다.[/footnote]을 입고, 면회용 슬리퍼를 신고, 손을 세정제로 씻어야 한다.
–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만 면회가 가능하고 나머지는 불가하다. 어린 아이는 감염의 우려가 있어 역시 불가하다.

저녁 면회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
우리 아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때는 더 이상 인큐베이터에 있지 않고 요람에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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