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esire compassion, and not a sacrifice.” Matthew 12:7
우리 아들은 요즘 나만 보면, ‘아빠, 차놀이 하자’면서 손을 잡아 끈다. 그러면 못이기는 척하면서 같이 논다. 사실 같이 논다기보다는 아이의 상상력에 맞추어 글자그대로 놀아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작은 손으로 이끌리는 느낌이 진짜 좋다.
그 힘은 작지만, 이 몸을 움직이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차놀이는 주로 삐뽀차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삐뽀차에 해당하는 것들은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들과 같이 경광등이 있는 모든 차를 가리키는 우리 아이 말이다.
어디에 불이 났다는 상황이 설정되고, 불 끄고, 다친 사람 운반하고, 등등이 쉴 새 없이 진행된다.
나는 창선이를 위해서 열심히 상황 설정에 맞추어 움직이거나, 가끔 내가 상황을 설정해서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면 그냥 시간이 휙 지나간다.
그리고, 요즘에는 몸으로 부딪히는 씨름을 많이 한다. 씨름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넘어짐 또는 밟힘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리라.
일단 힘겨루기를 하는데, 당연히 넘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넘어진 나를 그냥 안 둔다. 바로 올라타서 왔다갔다 한다. 배고, 다리고, 가슴이고 할 것없이 그냥 내 몸위로 다닌다. 이런 일로 아내와 장모님은 멍이 들기고 한다. 가족들의 몸은 우리 아이의 놀이터였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면 모든 것을 그냥 잊게 된다.
그리고 저절로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