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에서 바야흐로 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배운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footnote]습(習)은 새가 날기 위해 날개(羽)를 일백번(百) 퍼덕이는 것을 말한다. 나는 법을 배운 다음, 자기가 자기 날개를 백번 퍼덕여야 나는 법이 자기것이 되지 않겠는가?[/footnote]이 좋지 않은가?
군자는 혼자 고고한 척 있는 것도 아니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그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관계만 의존하여 자신을 매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홀로 그 존재감이 유지 된다. 이래야 정말 군자가 아닐까?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증자가 「나는 날마다 내 자신에 대해 세 가지 되돌아봤다.
爲人謀而不忠乎?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는데 충실히 하지 않았던가.
與朋友交而不信乎? 벗과 사귐에 미덥게 하지 않았던가.
傳不習乎? 」 배우고서 익히지 않았던가.」라고 말했다.
일을 하는 데 자기 진심을 다하여 처리하였는가?
믿을 만한 사람은 먼저 믿어줄 때, 만들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친구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가? 이것이 배우는 자세가 아니고 무엇일까?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 공자가 「제자는 (집에) 들어가면 효를 행하고, 나오면 우애를 행하고, 행실을 근신하게 하고 말한 것은 행하고, 많은 사람을 널리 아끼고 인자를 친애해야 한다. (이것을)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행함이 먼저이다. 실천이 없는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만약 행함이 없다면, 난 내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면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가르침인지 또는 내 생각에서 나온 가르침인지 알 것이다.”는 성서의 말씀과 일맥 상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