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담당하고 있는 한 학생마다 두 번 이상 상담하라고 한다.
이 학생들은 스무 살이 넘는 성인들이다.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나이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내가 그들의 인생을 살지 않고, 그들이 그들의 인생을 산다. 나는 상담을 하기 전에 이 점들을 학생들에게 상기시킨다. 심지어 나와 상담하고 내 연구실 밖으로 나서면서 상담 내용을 깡그리 무시해도 나는 어쩔 수 없다고까지 얘기한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상담해 줄 수 있는가?
나는 그들이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을 직면하게 해주고, 그 차이를 어떻게 줄여 나갈 지를 확인만 해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학생들의 논리적 헛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것도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최근에 한 학생과 진로에 관하여 상담을 했다. 그 학생은 진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 많이 받는 것이라 했다. (나는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항상 먼저 묻는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를 먼저 확정하라고 얘기해 준다.) 그런데 이 학생이 돈 많이 주는 분야가 집에서 멀고 심지어 주소지를 옮겨야 한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임금이 아니라 출퇴근 거리네’라고 해줬다. ‘만약 임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거리는 감수해야지. 출퇴근 거리로 선택을 바꿀 것 같으면 그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 학생은 많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자신이 갖고 있던 우선순위에 대한 개념이 뭔가 뒤죽박죽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나는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그 선택이 자신이 생각하는 판단기준 혹은 우선순위로부터 나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상담하는 나는 선택을 잘 하고 있나?